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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문

남매의 여름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기준 올해가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가 다양하게 안 나온 것도 있겠지만 그걸 배제하고도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영화일지 모르고 봤다가

감탄하면서 영화관에서 나온건 오랜만이었다. 코로나의 아픔과 갑갑함을 잠시나마 잊고

오롯이 자신의 감정에 집중할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주 젊은 신인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작년엔 영화 "벌새"가 큰 집중을 받았다면

올해는 "남매의 여름밤"의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줄거리로는 방학동안 어린 남매가 할아버지의 오래된 2층 집에서 아빠랑 셋이서 살기로 한 뒤

한동안 보지 못했던 고모까지 우연치 않게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사실 줄거리로만 본다면 그렇게 알맹이 없는 잔잔하고 단순한 독립영화일 것 같아 보이지만

각 캐릭터의 감정이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들이 진짜 깊숙하게 와닿을수 있고 공감되며 느끼는 바가 많아지는 영화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가 본질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억"과 "그리움"이라는 코드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린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면 제일 먼저 고등학교나 조금 더 가서 중학교 때까지의 추억만 되새기거나 친구들과 얘기하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나 그 전의 시절들은 잘 생각나지도 않고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생각해보지도 않고 잊혀만 갔던 어린 시절의 여름밤의 공기와 그때의 추억들이 생각나기도 했고

가족 간의 입장 차이와 사춘기 시절 누구나 겪을법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 따뜻하면서도 뜨거운 영화였다.

지금 영화를 다 보고 하루가 지나서 쓰는 거여서 많이 가라앉긴 했지만

영화관 밖을 나섰을 땐 이게 무슨 감정이지 내 안에서 왜 이런 느낌이 나지 하는 의문감이 들었고

혼란스러워 잠들기 전까지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 같다. 

이렇게 잊고 있거나 잊혀 가는 감정들을 찾아주고 상기시켜주는 느낌에 감사함도 느낀다.

이게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 보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영화 중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넘어가자면

 

극 중 옥주가 좋아하는 남자 친구에게 선물해줬던 

신발을 다시 벗기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인데

이때의 감정표현이 진짜 크게 와닿았고

영상미도 뛰어났으며

옥주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고

이때가 그래도 솔직하게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꺼내 자유로운 느낌도 들었다.

 

 

 

극 중 옥주는 

가족들에게 칭찬도 받고 싶고 인정도 받고 싶고

원하는 것도 말하고 하고 싶으나

동생의 재롱 한 번에  노력했던 건 다 없어진 것 같고

다들 왁자지껄 웃을 때 쓴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는

옥주의 마음에 이입이 가서 마음이 아팠다.

 

 

 

 

 

여기에 나오는 배우들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지만 진짜 옆집에서 불쑥 나오거나 

길에 다니다 마주칠 것 같은 그런 디테일하고 생생한 생활연기들을 보여줘서 극에 몰입하기가 훨씬 좋았으며

캐릭터들 하나하나 앞으로의 삶이나 미래를 응원하고 싶고 토닥여 주고만 싶다.

연출 역시 이 극 속에 너무 가깝게도 멀리도 아닌 그저 한 곳에서 지켜보는 듯한 카메라 구도와 

이 집에 속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너무 좋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가까우면서도 불편한 가족관계를 이렇게 섬세하게 풀어낼 수 있는 한국영화가 있나 싶다.

스펙터클 하지도 않은 지루하고 평범한 가족의 일상에 몰입하게 하고

극을 이끌어 나간다는거 자체가 명작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뉴웨이브가 이렇게 시작되는 느낌인 걸까. 에드워드 양의 영화를 볼 때의 느낌보다 더 와 닿고 좋았던 건 기분 탓인가.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요즘 신예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져 한국영화의 위상이 점점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 너무 멋있고 뿌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좀 더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겠다.

글을 쓰다 보니 그때 그 감정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다.

이제는 상영관도 많이 줄었고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

 VOD로 출시하면 꼭 강. 력. 추. 천해서 보라고 말해주고 싶고

어느 연령대나 관람해도 만족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다시 한번 꼭 찾아볼 영화다.

 

우리의 여름밤은 어땠을까, 앞으론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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